창고/자료

친절한 대만택시, 불친절한 베이징택시

거목 2018. 10. 21. 15:44

[광화문]친절한 대만택시, 불친절한 베이징택시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입력 : 2018.10.21 14:13
택시는 한 국가의 얼굴이다. 공항에서 탄 택시가 그 국가에 대한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가족들과 대만을 다녀오면서 이를 여실히 느꼈다. 여행 내내 만난 대만의 택시 기사들은 한결같이 친철했다. 아무리 짧은 거리를 가더라도 싫은 내색이 없었다. 짐이 많아 숙소에서 근처 지하철역까지 5분 거리를 타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렵사리 목적지 얘기를 꺼냈는데 택시 기사 분은 되레 공항 가는 길인지를 묻더니 가장 편리한 지점에 우리를 내려줬다. 상인들,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밝은 얼굴로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대만 여행은 그렇게 '친절'로 각인됐다. 

친절에 취했던 행복감은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직후 여지없이 깨졌다. 공항에 대기중인 택시를 타고 거주지인 '왕징'을 도착지로 말하자 기사분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왕징까지는 택시로 약 30분 거리. 베이징 외곽에 있는 공항까지 왔는데 목적지가 너무 가깝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택시 안은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적막감이 흘렀다. 베이징에서 택시를 타면 흔히 겪는 일이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경우는 특히 신경이 곤두선다. 베이징에서 살면서 받는 인상도 '공항 택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무표정한 얼굴의 공안들은 고압적이기 일쑤이고, 식당이나 상점을 가도 친절을 경험하기 쉽지 않다. 

지금도 한 국가라고 주장하는 중국과 대만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주변에 알 만한 분들께 물었더니 여러가지 답이 돌아왔다. 가장 많은 답변은 대만이 청일 전쟁 이후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친절한 일본 국민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체제 차이를 든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국민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견해다. 공산당 1당이 주도하는 중국은 경제 면에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개혁 개방을 추진했지만, 사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 색채가 강하다. 당이 국가 보다 우위에 있고 당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체제 비판이 금기시되고, 사회 통제도 강하다. 언론 검열은 물론이고 대중들이 인터넷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는 글들도 대부분 통제를 받는다.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는 아무래도 친절한 시민 문화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친절도 하나로 체제의 우열이나 국민의 삶의 질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 부터해서 그 체제가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개혁 개방 40주년을 맞는 등 체제 보완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서구사회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가 불친절과 같은 국민성으로 나타난다면 그냥 '차이'로 끝날 수도 있다. 중국이 불친절해서 싫다면 그만큰 덜 가면 된다. 국가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심각성은 중국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문제는 차이가 다른 국가의 이익을 침해할 때다. 대표적인 것인 무역과 경제다. 국가 주도의 중국식 경제가 보조금 지급, 기술 탈취, 외국기업 차별 등으로 불공정한 환경을 만들어 자국에 피해를 주고 있다면 그냥 두고 보기 어렵다. 피해국이 이를 제어할 힘이 있고 그 상대가 잠재적인 패권 경쟁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한 배경이다. 

공은 중국에 있다. 이상적인 것은 시스템의 '차이'를 지키면서 미국이 납득할 만한 카드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당과 정부가 경제에 대한 장악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런 카드를 찾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면 차이를 줄여야 하는데 이도 쉽지 않다. 체제가 흔들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의 선택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세월이 참 많이 변했는가 보다. 중국에서 20년간 생활하다가 귀국한지도 벌써 5~6년이 흘렀으니 말이다. 출장으로 수교도 안된 중국에 왔다가다 하다가 수교와 함께 중국 주재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때는 많은 것이 낫설고 불편했었다. 상점에서 고객이 왕이 아니라 판매원이 상전이었던 시절, 내국인과 외국인의 요금이 달랐던 시절, 외국인과 내국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달랐던 시절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기사에 택시에 대한 것이 나왔으니 택시 타는 것을 한번 회상해 보자.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러시아워나 대중교통이 끝날 시간에는 택시 잡는 것이 복권 마추는 것과 비슷하여 차도 이차선 까지 나가 따블, 따따블을 외치며 가는 길에 합승을 못하면 왜 승객인 내가 미안해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따블 다음에는 쓰리배나 세배일 것인대 어떻게 통크게 따따블로 올라가는지 그렇게 택시 잡는게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짐이 많거나, 골목으로 들어가야하는 곳으로 갈 때면 얼마나 운전기사 양반의 눈치를 봐야 했었는지, 그래도 어렵사리 꺼낸 말에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오면 괜한 말을 꺼내 계면적은 표정으로 내려 골목길을 걸어들어가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때 주된 교통수단은 당연히 택시였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차도에 차는 안보이고 차도 가득히 빽빽하게 자전거의 인해전술로 쓰나미 처럼 밀여오는 풍경 TV에서도 많이 보여준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양복을 빼입고 서류가방을 든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자전거 대열에 참여하기에는 좀 그렇고, 대중교통 체계도 그리 발달되지 안은 곳에서 그나마 안전하게 출퇴근할 수있는 교통수단은 택시 뿐이었다. 그렇다고 노선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고 그냥 깡통이(지금이야 한국에 밀리지 않지만) 굴러 다는 것 같은 버스를 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시내 중심가에서는 큰 건물 앞이나 택시 정류장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를 쉽게 잡을 수 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도 잡을 수 있었지만 조금만 외각으로 빠지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를 볼 수가 없어 쉽게 택시를 잡을 수는 없지만 콜을 하여 택시를 불러 사용함에는 커다란 문제가 없었다. 그 때만 해도 도시의 외곽까지는 덜 발달하여 퇴근을 하려면 조금 외각으로 나가 중간길로 어느 정도 들어가는 곳에 집이 있어 한국에서의 마음 가짐으로 샛길로 들어가 달라는 부탁을 할 때는 미안한 마음과 돌아나갈 때 빈차로 돌아가야하는 미안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했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중국인 직원과 같이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일이 있었는대 중간에 상점에 들려 물건을 좀 사가지고 들어가야 했었다. 어쩌나 중간에 상점에서 내려 택시비를 정산하고 물건을 사와 다시 택시를 잡으려면 좀 번거로울 텐대 걱정을 하고 있는대 중국인 직원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나를 쳐다본다. 뭐가 걱정이에요 기다리라고 하면 되지요. 그래도 되요? 당연하지요 시간 거리 병산제 요금 방식이어서 기다리는 시간도 요금이 올라가는대 무슨 걱정이에요?  그리고는 중간에 내려 여유롭게 물건을 산 후에 그 택시를 다시타고 집까지 갔다. 그 후로는 자가용을 사용하듯이 중간에 세워 잠깐 물건도 사고 골목길을 꺼리낌 없이 들어가는 호사를 누리며 택시를 사용하였다.

물론 지금의 환경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 때의 택시 운전자의 수입은 도시 평균 월급자 보다 높았다. 그렇게 바쁘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됬었다. 또 그렇게 아등바등 산다고 손님이 많아지는 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여유로운 운전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환경이 변해 택시 운전사의 소득이 도시 평균 월급자 보다 떨어지는 상황이고 바쁘게 움직이면 그만큼 소득이 오르는 상황이다 보니 시간 소비를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어디 한국의 상황과 비교를 하겠는가? 우리나라도 조금씩 개선이 되어가곤 있지만 아직 옛날 습관에서 많이 자유롭지는 안는 것 같다. 

참으로 놀랍다. 대만과 북경의 택시운전사의 태도에서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느끼고 정책의 비판으로 까지 이어지는 기자의 감성과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물론 어떤 사안에 대하여 느끼는 점은 개개인이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도 최근 중국정부의 덩치만 컸지 속 좁은 행동들에 대하여 비판하고 싶은 심정이나, 그렇다고 아무 것에서나 갔다 붙이는 것은 그 들과 똑 같이 되려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